셀프 인테리어의 진실: 예산보다 체력이 먼저다
‘돈만 있으면 바꿀 수 있다’는 착각에서 시작됐다
나는 셀프 인테리어를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예산부터 계산했다. “한 200만 원 정도면 충분하겠지.” 도배는 셀프로, 조명 교체도 셀프로, 가구도 직접 조립해서 설치하면, 전문가를 부르지 않고도 충분히 감각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유튜브와 블로그에는 ‘10만 원으로 원룸 바꾸기’, ‘30만 원 셀프 인테리어’ 같은 콘텐츠가 넘쳐났고, 나는 그런 글과 영상을 참고하며 계획을 짰다. 자재비와 가구비, 배송비, 공구 구매비까지 포함해서 꼼꼼히 정리했고, 심지어 예상보다 조금 더 쓰더라도 만족스럽게 꾸밀 수 있으리라는 확신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가장 중요한 변수 하나를 놓쳤다. 바로 체력이다. 셀프 인테리어는 시간과 기술이 중요하다고들 말하지만, 내가 겪은 현실은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아무리 돈이 있어도, 아무리 예쁜 디자인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계획은 간단했다. 하루에 도배, 다음 날엔 바닥재 교체, 그리고 나머지 이틀 동안 조명, 커튼, 가구까지 배치하자는 식이었다. 하지만 첫날 도배 작업만 마친 뒤, 나는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할 정도로 온몸에 통증을 느꼈고, 이후 작업들은 줄줄이 미뤄졌다. 예산은 남았지만, 몸이 무너졌다.
도배, 장판, 가구 조립… 생각보다 ‘노가다’였다
도배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셀프 도배 키트를 사용했다. 풀, 솔, 커터칼, 장갑, 마스킹 테이프까지 모두 세트로 들어 있었고, 유튜브에서 보던 대로 하면 충분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직접 해보니 가장 힘든 건 ‘계속 쭈그려 있어야 한다는 점’이었다. 바닥에 무릎 꿇고 벽지를 자르고, 일어서서 붙이고, 다시 구석을 눌러 붙이기를 반복하다 보면 허리와 무릎에 무리가 왔다. 하루 만에 끝낼 생각으로 새벽까지 작업을 강행했고, 그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자 손목에 통증이 왔다. 다음 작업인 바닥 시공은 아예 미룰 수밖에 없었다.
바닥 시공도 상상 이상으로 체력을 요구했다. 장판을 자르려면 정확한 치수가 필요하고, 자른 장판을 구불구불한 공간에 딱 맞춰 깔아야 한다. 특히 방 모서리나 문 틈 주변은 정밀한 작업이 필요하고, 그만큼 자세를 낮춘 채 오랜 시간 무릎을 꿇고 있어야 한다. 나는 이 작업에서 체력의 바닥을 경험했다. 결국 바닥은 중간에 접힌 자국이 생겼고, 다시 들춰 깔기 위해 체력과 시간이 또 소모됐다. 여기에 가구 조립까지 이어지자 몸은 한계에 도달했다. 서랍 하나를 조립하는 데 두 시간을 썼고, 설명서를 반복해서 읽어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체력이 바닥나면 판단력도 무너진다. 그날 나는 결국 중간에 작업을 멈추고 누워버렸다. 몸이 움직이지 않으니 계획도 멈췄고, 작업은 일주일 이상 지연됐다.
돈보다 힘이 먼저 닳는다 – 셀프 인테리어의 숨겨진 현실
셀프 인테리어는 외부에서 보면 감성적인 도전처럼 보인다. 실제로 누군가 내 방을 보며 “혼자서 이렇게 했다고? 대단하다”는 말을 할 때마다 뿌듯함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말 뒤에는 아무도 모르는 과정이 숨어 있다. 예산을 아끼겠다고 시작한 셀프 인테리어는, 체력과 정신력을 갉아먹는 장기전이 되기 십상이다. 자재는 무겁고, 가구는 크고, 공간은 좁고, 작업할 곳은 구부려야 하며, 하나가 끝나면 다음 단계가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하루에 작업할 수 있는 양이 생각보다 적다. 나는 도배, 장판, 조명, 커튼, 가구 조립을 이틀에 나눠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하루에 한 작업도 완벽하게 끝내기 어려웠다. 체력 소모로 인해 집중력도 떨어지고, 실수가 생기면 그걸 고치는 데 또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 모든 피로는 작업이 끝난 뒤에도 지속된다. 나는 한동안 손목 통증과 허리 통증 때문에 병원에 다녀야 했고, 결국 물리치료비로 추가 지출이 발생했다. 예산을 아끼겠다는 선택이, 내 몸과 시간, 정신력까지 끌어다 쓰는 결과가 된 것이다.
셀프 인테리어는 예산 이전에 ‘내 몸 상태부터 체크’해야 한다
나는 셀프 인테리어를 다시 계획한다면, 가장 먼저 체력 일정을 체크할 것이다. 예산표를 작성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하루에 어떤 작업을 얼마나 소화할 수 있는지, 내 체력은 어디까지 버틸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특히 직장인이나 주말에만 시간을 낼 수 있는 사람들은 작업 일정을 너무 타이트하게 잡지 말아야 한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기준이 생겼다. 도배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조명이나 가구 정도는 내가 하되, 하루에 하나씩만 한다. 예쁜 결과물을 빠르게 얻는 것보다, 내 몸을 망치지 않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셀프 인테리어는 매력적인 선택이다. 비용도 절약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스타일대로 꾸밀 수 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만만하지 않다는 걸 미리 알아야 한다. 돈만 준비한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체력과 시간, 집중력, 반복 작업을 견딜 수 있는 정신력까지 준비해야 한다. 셀프 인테리어를 ‘취미’처럼 여길 수 있으려면, 감성보다 리얼한 현실을 먼저 직시해야 한다. 나는 이번 경험을 통해 더는 무리하지 않는다. 공간은 바뀌었지만, 가장 크게 바뀐 건 셀프 인테리어를 대하는 내 태도였다. 예산보다 먼저 준비돼야 할 건 ‘내 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