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하나로 시작한 내 방 셀프 리모델링
처음엔 단순한 계획이었다. 오래된 원룸, 낡은 책상과 의자. 내 손으로 감성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나오는 북유럽풍 원목 가구, 간접 조명 아래 널찍한 테이블, 각 잡힌 수납함들. ‘나도 저렇게만 만들면, 공간이 달라지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만들면 비용도 줄고, 무엇보다 내 손으로 만든 가구에서 오는 성취감이 분명히 있을 거라 믿었다. 그래서 나는 인터넷에서 DIY 조립 가구 3개를 한꺼번에 주문했다. 조립 설명서가 들어 있고, 공구도 동봉되어 있다는 문구에 ‘이건 누구나 할 수 있겠네’라고 생각했던 게 문제의 시작이었다.
도착한 택배 박스는 생각보다 컸다. 작은 테이블 하나, 수납 서랍 하나, 그리고 미니 옷장을 주문했을 뿐인데, 집 안이 목재와 철제 부품으로 가득 찼다. 박스를 뜯자마자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나사 종류만 5가지, 조인트 부품은 번호조차 안 써 있었고, 설명서는 마치 수학 문제처럼 어렵게 느껴졌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DIY는 ‘감성’이 아니라 ‘물리적 인내심’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사실을. 그렇게 내 멘탈 붕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다.
첫 조립에서부터 망가진 흐름, ‘의외로’가 너무 많았다
가장 먼저 시도한 건 작은 테이블이었다. 상판 하나에 다리 4개를 연결하면 끝나는 구조라 쉬울 줄 알았다. 하지만 나사 구멍은 비대칭이었고, 설명서와 실제 부품 사이에는 미묘한 불일치가 있었다. 왼쪽 다리를 먼저 끼우자 오른쪽이 맞지 않았고, 억지로 끼운 나사가 나무를 찢어버렸다. 나는 다시 전동 드라이버를 꺼냈지만, 토크 조절을 하지 않아 나사가 목재 깊숙이 박혀버렸다. 결국 상판은 벌어지고, 다리는 삐뚤게 고정되었다.
수납 서랍 조립도 마찬가지였다. 서랍 레일이 좌우가 헷갈렸고, 똑같이 생긴 판재가 실제로는 다르게 사용되어야 한다는 걸 조립 도중에야 알았다. 한 번 조립한 부품은 빼는 것도 힘들었다. 얇은 MDF는 한 번 틀어지면 되돌릴 수 없고, 나는 결국 3개의 서랍 중 1개는 제대로 닫히지 않는 상태로 포기했다. 가구 하나를 만들 때마다 허리가 아프고, 손바닥은 까지고, 조명 아래서 설명서를 뒤집어 놓고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문제는 ‘조립이 어렵다’가 아니라, ‘내가 생각했던 난이도가 너무 낮았다’는 데 있었다. 예상과 현실 사이에 벌어진 간극이 멘탈을 찢어놓았다.
시간, 체력, 비용 모두 초과 – 셀프보다 더 비싼 DIY의 실체
애초에 이 모든 DIY 조립 가구는 “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나는 전문가에게 맡기면 기본 가구 3개 설치비용만 15만 원 이상이라는 견적을 보고, DIY 제품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조립에 쏟아부은 시간은 3일, 총 작업 시간은 약 14시간 이상이었고, 이틀은 허리를 펴지 못할 정도로 몸살이 났다.
게다가 실패한 부품을 교체하거나, 추가 공구(수평계, 육각렌치, 고무망치 등)를 사면서 5만 원이 추가로 들었다. 가장 큰 낭비는 ‘재구매’였다. 미니 옷장은 문짝이 한쪽만 맞지 않아 경첩이 부서졌고, 문은 닫히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 옷장을 중고장터에 반값에 넘기고, 새로운 완성형 옷장을 따로 샀다. 처음 DIY 가구 3개에 들인 돈은 24만 원이었고, 결국 총 지출은 36만 원을 넘겼다. 전문가에게 맡겼을 때보다 시간은 5배, 체력 소모는 10배, 결과물은 70% 수준. DIY는 직접 하는 대신 책임도 온전히 내가 지는 구조였고, 그것이 비용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남겼다.
셀프 인테리어, 무작정 시작하면 ‘내가 공사 대상’이 된다
지금 다시 돌아보면, DIY 가구는 단순히 ‘가구를 만든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작은 공간에서 무언가를 조립하고 설치한다는 건, 공간 전체를 구조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하는 작업에 가까웠다. 가구를 배치할 수 있는 위치, 동선, 문 여닫이 방향, 벽과의 거리까지 모두 사전에 고려되지 않으면 결국 가구는 ‘짐’이 되고 만다. 나는 DIY 가구로 내 공간을 채웠지만, 그 가구들은 나의 생활을 돕기보다 방해하는 구조물이 되었다.
무엇보다 셀프 인테리어는 감성적인 목표만으로 접근하면 안 된다. 나는 ‘예쁜 방’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 결과 예쁘지 않고 불편한 방에서 한동안 지내야 했다. DIY는 실패 가능성을 동반하며, 단 한 번의 치수가 틀어져도 결과물은 완전히 망가질 수 있다. 조립 설명서에는 실패 후 처리법이 없고, AS도 제한적이다. 그러니 직접 하기로 결심했다면, 적어도 ‘내가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셀프 인테리어는 나를 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지만, 나의 한계를 직시하게 만드는 작업이기도 하다. 나는 이번 경험으로 ‘무조건 내가 한다’는 고집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 멘탈은 무너졌지만, 이제는 DIY 앞에서 감성 대신 체크리스트를 먼저 꺼내는 사람이 되었다. 다음에 다시 시도한다면, 나는 ‘감성적 결과’가 아니라 ‘기능적 지속성’을 기준으로 계획을 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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